숨은 생명체 관찰

1편. 사이포노포라는 무엇인가 – 하나인데 여럿인 존재의 비밀

생물기록가 애나 2025. 8. 7. 06:30

사이포노포라는 무엇인가 – 하나인데 여럿인 존재의 비밀

사이포노포라(Siphonophore)는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다.

이 생물은 수천 개의 개체가 모여 하나의 생물처럼 살아가는 집단 생명체로,

지구상에서 가장 긴 생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 놀라운 구조를 파헤쳐 보자.


사이포노포라(Siphonophore)는 육안으로 보면 하나의 길쭉한 생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존재를 "하나이면서 여럿인 생물" 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이는 해파리 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벌레라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둘 다 아니다. 이들은 수천 개의 독립된 생명체가 결합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식민 생물
이다.

 

이 글에서는 사이포노포라라는 희귀한 심해 생물을
과학적 시각과 독자의 궁금증 흐름을 따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포루투갈 군함 해파리

1. 사이포노포라는 어떤 생물인가?

사이포노포라는 자포동물문(Cnidaria)에 속한다.
즉, 해파리, 히드라, 산호와 같은 분류군에 포함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해파리처럼 단일 개체로 살아가는 게 아니다.

사이포노포라는 "조이드를 가진 식민 생물(colonial organism)"
개체가 아닌 다수의 개별 생물이 기능별로 분화돼 결합한 형태다.
이 조이드들은 생식, 소화, 움직임 등 각자 역할이 다르다.

 

쉽게 말해,
심해 속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이는 저 생물은 사실 수천 개의 생물이 결합된 팀인 셈이다.

 

2. 외형은 해파리,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사이포노포라는 대부분 길쭉하고 투명하다.
특히 대표 종인 프리오말리아 브레비스(P. bachei)
40~50m까지 자란 사례도 있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긴 생물로 꼽힌다.

그 긴 몸은 크게 네 가지 기능 단위로 나뉜다:

 

구분 역할
네크토포어(Nectophore) 수영 기능 담당, 근육 운동으로 이동
가스트로조이드(Gastrozooid) 음식 소화
피뉴마토포어(Pneumatophore) 부력 조절
고노조이드(Gonozooid) 생식 기능 수행
 

이 구조는 마치 인간의 조직처럼 기능별로 협력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차이는 명확하다.
이 구성원 하나하나가 독립된 생물이라는 점이다.

 

3. 왜 "지구에서 가장 긴 생물"로 불릴까?

2020년, 오스트레일리아 해양과학연구소팀은
로봇 잠수정을 이용해 서호주 심해 600m 지점에서
길이 45m 이상의 사이포노포라를 촬영했다.
이는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생명체 중 가장 긴 기록이다.

중요한 건 이 길이가
"몸이 늘어나서 그런 게 아니라, 개체들이 길게 연결돼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이건 지금까지의 생물학적 정의에 도전장을 내민 발견이기도 했다.

하나의 생명체인가, 생물 집합인가?
생명체의 경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과학자들이 사이포노포라에 열광한 이유는
단지 크기 때문만이 아니다.
생명의 구조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4. 심해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진화

사이포노포라는 600~1000m 이상의 심해에 서식한다.
햇빛은 도달하지 않고, 수온은 거의 4도 이하로 떨어진다.
압력은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이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이포노포라는 아래와 같은 생존 전략을 진화시켰다:

  • 투명한 외피: 포식자 회피
  • 형광 발광(생물발광): 의사소통 및 방어
  • 느린 움직임: 에너지 절약
  • 기능 분업화: 생존 효율 최적화

이러한 구조 덕분에
사이포노포라는 심해 생태계에서 고유한 역할을 하는 생물로 자리 잡았다.

 

5. 사이포노포라, 생물학을 다시 쓰게 만든 존재

과학자들이 사이포노포라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이 생물은 세포 분화, 개체성, 진화론, 집단지성 같은
복잡한 생명 시스템 연구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 다기능 로봇 시스템 설계: 기능 분화 기반 로봇 플랫폼
  • 인공 생명 연구: 독립된 시스템이 협업하는 AI 구조
  • 의료 진단 기술: 모듈화된 생체 시스템 모델링

이처럼 사이포노포라는 단순한 ‘희귀한 생물’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그 자체를 확장시켜주는 살아 있는 개념 모델이다.


2편 예고

“사이포노포라는 생물인가? 사회인가?”
→ 생물학적 개체성 논란 정리 + 철학적 물음 제기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