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사이포노포라는 생물인가? 사회인가?
사이포노포라는 생물인가? 사회인가?
사이포노포라는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그 정체는 하나의 생물이자 수천 개의 생물이다.
이 독특한 존재는 개체성과 식민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물학과 철학의 개념을 동시에 흔든다.
사이포노포라의 정체를 파헤쳐 본다.
사이포노포라(Siphonophore)를 처음 본 사람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한다.
"해파리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세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근데... 이거 진짜 하나의 생물 맞아?"
"분명히 여러 개체가 붙어 있는 것 같은데?"
바로 여기서 사이포노포라의 핵심 정체성 논쟁이 시작된다.
이 생물은 과연 하나의 생명체인가, 아니면 협업하는 생물들의 집단인가?
1. 개체성(individuality)의 기준은 무엇인가?
생물학에서 '개체'라는 말은 단순히
"하나의 몸을 가진 생물"이라는 의미를 넘는다.
개체로 인정받기 위해선 보통 아래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 | 설명 |
유전적 일관성 | 하나의 유전 정보로 구성됨 |
대사 통합 | 에너지 소비와 대사가 연결되어 있음 |
환경 반응의 통일성 | 자극에 대해 일관된 반응을 보임 |
사이포노포라는 이 기준 중 일부는 충족하지만,
일부는 완전히 벗어난다.
2. 사이포노포라의 구조는 '개체'인가 '식민체'인가?
사이포노포라는 수백~수천 개의 '조이드(zooid)'로 이루어진다.
각 조이드는 하나의 개체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로는 스스로 살 수 없는 불완전한 생물이다.
즉, 조이드는
- 스스로 먹지도 못하고
-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 혼자선 생식도 못 한다
하지만 수백 개의 조이드가 모이면
놀랍게도 하나의 거대한 생명 시스템이 작동한다.
"나는 너 없으면 살 수 없어"라는 전제로 연결된 생명들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사이포노포라를 "식민 개체(colonial individual)"라고 부른다.
→ 즉, 여러 개체가 모여 하나의 개체처럼 살아가는 존재
3. 사회적 생물인가? 생물적 사회인가?
여기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질문이 나온다.
"그럼 이건 벌집이나 개미집처럼 '사회적 생물'인 건가?"
답은 "아니다."
- 개미나 꿀벌은 완전히 독립된 생명체들이 협력하는 사회
- 사이포노포라는 독립 불가능한 개체들이 유기적으로 붙어 있는 구조
이 말은 곧,
사이포노포라는 생물적 기능을 가진 ‘사회’가 아니라,
사회의 형태를 띤 하나의 생명체에 가깝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이 개념을
"개체성의 모자이크"
라고 표현한다.
4. 철학도 던지는 질문: 생명이란 무엇인가?
사이포노포라는 단지 생물학적 구조로서가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생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의 정의를 흔들기 때문이다.
- 혼자선 못 사는 생명체는 생명인가?
- 수많은 불완전한 생물들이 모여 만들어낸 완전함은 어떤 의미인가?
- 유전자가 같다면 그것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사이포노포라는 이 질문들에 대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살아 있는 예외 사례'가 되어주고 있다.
→ 사이포노포라는, 결국 무엇인가?
정리하자면
- 사이포노포라는 진화가 만든 생물의 절묘한 타협점이다.
- 스스로 살 수 없는 개체들이
기능을 분화하고,
유전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처럼 살아가는 "합생의 결정체"다.
이 생물은 인간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진짜로 '하나'라는 건 뭐지?"
"너희는 정말 '개별적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어?"
그 질문은 과학자만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 3편 예고
"사이포노포라는 심해 생물계를 어떻게 지배하는가"
→ 심해 생태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 포식/피식, 이동 방식, 생태적 위상 분석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