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바다유리새우(Pasiphaea)의 투명성 메커니즘: 빛을 지우는 진화의 마법
바다유리새우(Pasiphaea)의 투명성 메커니즘: 빛을 지우는 진화의 마법
바다유리새우(Pasiphaea spp.)의 투명한 몸은 단순한 외형적 특성이 아니라,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완성된 위장 전략이다.
이번 글에서는 투명성을 만드는 세포 구조, 빛의 굴절률 조절, 내부 장기의 은폐 방식,
그리고 이러한 특성이 어떤 진화적 이점을 주었는지 전문가 시선에서 분석한다.
투명한 생물은 지구상에 많지 않다.
특히 바다에서는 일부 해파리, 요각류, 그리고 바다유리새우 같은 부유성 갑각류가 투명성을 지닌다.
그중 바다유리새우의 투명성은 단순히 색이 없다는 차원을 넘어,
빛의 경로를 조작하는 정교한 구조적 결과물이다.
색소세포의 최소화
대부분의 갑각류는 체표에 색소세포를 갖고 있어, 환경에 따라 색을 바꾼다.
하지만 바다유리새우는 색소세포의 발달을 거의 포기했다.
이 선택은 위험했다.
색소세포는 자외선 차단, 물리적 보호, 신호 전달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러나 색을 완전히 지우면, 시각에 의존하는 포식자에게 거의 보이지 않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빛의 굴절률 조정
투명한 물체가 눈에 띄는 이유는 빛이 경계면에서 굴절되기 때문이다.
바다유리새우의 외피는 굴절률이 바닷물과 거의 동일하다.
이 미세한 조정은 키틴질의 분자 구조와 수분 함량을 조절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결과적으로 빛이 외피를 통과할 때 거의 방향이 바뀌지 않아, 실루엣이 흐려진다.
내부 장기의 은폐 기술
투명성의 가장 큰 적은 내부 장기다.
간, 위, 생식선 같은 기관은 불투명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눈에 띄기 쉽다.
바다유리새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 장기 주변에 반투명 조직을 배치해 빛을 부드럽게 산란시키고,
- 혈액 색소 농도를 낮춰 색 대비를 줄인다.
이 덕분에 먹이를 먹은 직후에도 체내 내용물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먹이와 투명성의 상관관계
투명성은 먹이 사냥에도 영향을 미친다.
포식 대상인 동물성 플랑크톤은 주로 시각과 수압 변화를 감지한다.
바다유리새우는 투명한 몸으로 시각적 탐지를 피하면서,
더듬이와 촉각을 이용해 먹이에 접근한다.
빛을 내거나 색을 바꾸는 생물보다 사냥 효율은 낮을 수 있지만,
에너지 소모가 적어 장기 생존에는 유리하다.
진화적 배경
바다유리새우의 조상은 아마도 연안에 살던 색소 보유 갑각류였을 것이다.
심해와 중층 환경으로 진출하면서 시각 포식자의 압력이 강해졌고,
색을 줄이는 방향의 변이가 선택받았다.
수백만 년 동안 굴절률 조정, 장기 위장, 색소 제거가 누적되면서
오늘날의 완전한 투명성에 가까운 형태가 만들어졌다.
투명성의 한계와 대가
완전한 투명성은 강력한 위장이지만, 모든 상황에서 유리하지는 않다.
- 빛이 전혀 없는 심해에서는 색이 큰 의미가 없으며,
- 강한 조류나 파도 속에서는 물리적 방어력이 떨어진다.
또한 색소 결핍은 자외선 차단 능력을 약화시킨다.
이 때문에 바다유리새우는 낮 동안 더 깊은 수심으로 이동해
햇빛 노출을 최소화한다.
미래 연구 가능성
바다유리새우의 투명성은 바이오미메틱스(biomimetics) 분야에서 주목받는다.
광학 위장 소재, 수중 감시 장비, 군사용 스텔스 기술에 응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투명성 유지 메커니즘을 완전히 복제하려면,
미세구조와 생리 기능을 동시에 재현해야 하는 난제가 남아 있다.
다음 편에서는 바다유리새우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냥하는지,
그리고 투명성이 사냥 전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