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잔 (유보하신 기쁨의 잔, 받으신 고난의 잔) - 마태복음 26:29,42 묵상
조용히 떠오른 고백
두 개의 잔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그려본다.
기쁨과 교제의 잔을 잠시 내려놓으시고,
진노와 고난의 잔을 받아드시는 그 장면이 오늘따라 마음에 오래 머문다.
나는 자주 ‘고난은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오늘 말씀 앞에 서니,
주님은 단지 참고 견디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 잔을 '선택하신 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마셔야 할 죄의 잔을, 주님이 마셨다.
그 무게를 짐작도 못하면서 은혜를 너무 쉽게 말해온 지난 날들이 부끄럽다.
내려놓으신 잔, 받아드신 잔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에서 제자들과 포도주를 나누셨다.
그 자리에는 감사와 사랑이 흘렀다.
그러나 곧,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혼자 남으셨다.
"내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주님은 기쁨의 잔을 내려놓으시고, 고난의 잔을 받으셨다.
그 선택의 진심이 내게 너무 낯설고 뭉클했다.
그 사랑이 나를 위해 흘러들어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약속된 잔치, 새 포도주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주님은 그 고통의 길 한가운데서도 ‘재회의 약속’을 하셨다.
지금은 함께 마시지 않지만, 반드시 다시 마시게 될 날을 기약하셨다.
그 말씀이 내게 이렇게 들렸다.
“내가 지금 이 고난의 길을 가는 건,
너와 영원히 마주 앉을 날을 위해서란다.”
이 땅의 기쁨은 흔들리지만,
아버지의 나라에서 주어질 기쁨은 새롭고 영원하다.
그 약속이 오늘 내 하루를 붙들었다.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삶이 흐릿하게 느껴질 때, 방향을 잃을 때,
주님의 약속은 북두칠성처럼 나를 이끌어준다.
천국 소망은 나의 감정을 넘어, 내가 걸어야 할 길을 가리켜준다.
그 길 끝에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일으킨다.
신부의 기다림
주님의 신부로 살아간다는 건,
그분의 고난에 조용히 동참하는 것이다.
눈에 띄는 사명도, 대단한 헌신도 아니지만
오늘 내 앞에 놓인 고난의 잔을 받아드는 마음,
그 마음 하나가 주님을 향한 진심이길 바란다.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신랑 되신 주님과 다시 마주 앉을 그 날을.
성찬 앞에서 떠오른 생각
떡을 떼고, 잔을 마시며 주님을 기억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주님은 나를 기억하시고,
나는 그분의 희생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다시, 고난의 한걸음을 내디딘다.
그 끝에 기쁨의 잔치가 있다는 소망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 내 삶의 실천으로
- 오늘 하루, 내가 내려놓아야 할 '기쁨의 잔'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적어보고 기도로 내려놓기
- 고난의 잔을 기꺼이 받은 주님을 기억하며, 작게나마 누군가를 섬기는 일을 선택해보기
-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그 사랑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다시 천국의 소망을 마음에 새기기
오늘 내게 머문 질문
- 나는 어떤 잔 앞에 서 있는가? 지금 내려놓아야 할 잔은 무엇이고, 받아야 할 잔은 무엇일까.
- 주님의 약속을 소망이라 믿으며, 오늘 나의 하루는 그 믿음에 걸맞게 흘러가고 있는가.
- ‘기다림’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다림이 고요한 순종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 이 글은 말씀을 들은 후, 조용히 하나님 앞에 쓴 개인 묵상 고백입니다.
설교 요약이나 전달이 아닌, 한 신자의 내밀한 기록이며 애드센스 정책을 고려해 재구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