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심장을 찔렀다. 그래서 나는 가르치기로 했다.
신명기 6장 4~9절, 하나님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강론하라고 하셨다.
그날, 나는 말씀 앞에서 무릎 꿇었다. 삶의 중심을 바꾼 말씀 묵상의 고백.
말씀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심장을 찔렀다.
그래서 나는 가르치기로 했다.
어떤 말씀은 조용히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이고,
어떤 말씀은 한참을 안아주다 눈물 나게 만든다.
그런데 신명기 6장 4~9절,
이 말씀은…
내 심장을 찔렀다.
숨을 멈추게 만들고,
가만히 엎드리게 만들고,
도저히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
나는 그날 밤, 이 말씀이 나에게 이렇게 들렸다.
“애나야, 너는 나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니?
네가 지금 살아내는 삶이,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니?”
'강론하라'는 말씀, 왜 이렇게 날카로울까?
'강론하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날카롭게 하다’였다.
그 의미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말씀은 나를 위로하려 온 것이 아니라,
나의 흐릿한 신앙을 예리하게 벼리기 위해 왔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이다.
내 생각, 내 불안, 내 합리화,
그 모든 것을 가차 없이 쪼개신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을 갈 때든지,
누워 있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강론하라.”
(신 6:6-7)
하나님은 ‘기회 될 때마다 말씀을 가르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모든 순간마다 말씀을 새기고,
자녀에게 날카롭게 전하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무릎 꿇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네..!! 주님.
저부터, 이 말씀을 생명처럼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전하겠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적이 아니라 말씀
신명기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앞두고 있을 때 주어진 것이었다.
눈앞에는 거인족, 성이 하늘까지 닿았다는 소문,
무기 하나 없는 현실,
두려움투성이였다.
하지만 모세는 말했다.
“진짜 적은 눈에 보이는 거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삶의 문제들, 감정의 굴곡, 사람들의 말보다
진짜 싸워야 할 적은,
말씀을 잊고 사는 내 마음이었다.
강론의 목적은 ‘기억’이다
강론은 단순히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날카롭게 기억하게 하는 일이다.
나는 너무 자주 잊었다.
주님이 내게 주셨던 구원의 기적,
내 죄를 껴안으시고 돌아가신 그 사랑,
다 이루었다 하신 부활의 승리를.
말씀을 강론한다는 건,
내게도, 내 자녀에게도,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잊지 말자”는 끊임없는 호흡이다.
묵상 질문
- 오늘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선명하게 듣고 있었는가?
- 내 안에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게 막는 ‘강대한 적’은 무엇인가?
- 내 자녀 혹은 다음 세대에게, 나는 무엇을 말로 가르치고 있나?
삶의 적용 실천
- 매일 아침, 신명기 6장 4~9절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고 마음에 새긴다.
- 하루 중 한 순간, 자녀나 누군가에게 말씀을 나누는 3분 대화를 시도해본다.
- 삶에서 맞닥뜨리는 두려움 앞에서, "진짜 적은 불순종이다" 라고 선포하며 말씀으로 나를 점검한다.
고백
그날 밤 이후로 나는,
내가 듣는 말씀만큼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그 말씀을 사랑하고 싶은 갈망이 생겼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걸
이번엔 정말, 뼛속까지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강론하기로 했다.
날카롭게 기억하고, 부지런히 전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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