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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에세이

그냥 멍해지고 싶은 날, 주님은 가만히 나를 안아주셨다

by 복음돌아이, 애나 2025. 7. 17.

“그냥 멍해지고 싶은 날, 4B 연필처럼 번져버린 나의 마음”

 

오늘은 유난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짜증도 나고, 달고 짜고 매운 것도 먹고 싶고,
그냥 나를 멍하게 방치하고 싶은 그런 날.

 

아들에게 괜히 짜증을 내고,
등원시키고 나서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르겠다.
이유를 굳이 찾자면 생리 전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그냥… 내 안이 번져 있는 것 같은 날이었다.
마치 4B 연필로 그린 선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놓은 듯,
조금은 흐려지고, 조금은 따뜻하고, 조금은 나를 닮은 그런 하루.

 

주님께서 잡아주신 나의 손


 

나는 글을 쓰는 게 좋다.
글을 쓰면 세상이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 선명함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그냥… 연한 아메리카노 같은 하루가 좋았다.
경쾌함은 사라지지 않되, 강한 맛은 없는 상태.
지금 나는 그런 하루를 원하고 있다.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
내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로 뭔가를 ‘제대로’ 해낸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시간의 연장선에서 갑자기
“난 왜 이렇게 멍해?” 라는 생각이 나를 때렸다.

 

그 감정이 싫진 않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좀 무서웠다.


 

그때 생각난 말씀이 있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주님은 내가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쓸 때보다,
그냥 멍하니 주저앉은 날에 더 다정하게 찾아오셨다.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는 이 말씀은
오늘 내 감정에도 닿을 수 있는 말씀이었다.


 

나는 늘 선명한 선으로 나를 그리고 싶어 했다.
‘의욕적인 나’, ‘이겨내는 나’, ‘좋은 엄마’ 같은 선들.
그런데 오늘은 손가락으로 살짝 문질러져서
경계가 흐려진 내 모습이 싫지 않았다.

 

그 흐릿함 속에서도
주님은 나를 안아주신다는 걸 알게 됐다.
오히려 그런 날,
그 선명하지 않은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듯이.


 

주님,
오늘은 저를 정리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멍한 이 감정 속에서도 주님이 계신다는 걸 믿습니다.
내 마음이 4B 연필처럼 번져 있을 때에도
그 흐릿한 온기를 통해 주님을 느끼게 해주세요.
제가 쉬는 오늘도, 주님은 함께 하시는 날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혹시 여러분도 지금,
정리되지 않는 감정과
이유 없이 가라앉는 마음 한가운데 계신가요?

 

그럴 땐 애써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도 주님은 당신의 연한 하루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